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김기영 감독의 괴작이라는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코믹하면서도 공포느낌이 나게 연출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제작기간이 23일 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신경써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아주 세련되게 연출되어서 옛날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주인공인 영걸은 근육질 몸매에 비싸보이는 시계를 차고 쫄티를 입은 [세련된 도시남자]이다. 그런데도 달동네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떼워야 되는 처지다. 첫장면에서 나비를 잡으러 갔다가 만난 여자에게 죽을 위기를 겪는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여자에게 당한다. 다른 장소에서 만났으면 좋은 인연이 되었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이유도 알 수 없고 갑자기 죽자고 한다. 두번째 만난 여자도 이천년만에 깨어나서 죽자고 하고 세번째 만난 여자도 같이 죽자고 한다. 김기영 감독 영화의 특징은 여자가 남자 잡아먹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모두 매력적이고 남자들은 좀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하다.

신라 여인으로 등장하는 이화시는 정말 색기가 넘치고 세련되었다. 70년대 영화배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차라리 신라 여인과의 에피소드를 더 길게 늘여서 코믹하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너무 허무하게 끝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이 에피소드에서 말하고자 하는 감독의 생각은 정말 재밌기 때문이다.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처지에 매력적인 여인이 나타나서 같이 살자고 매달리고 있으니 마른하늘에도 비가 내릴때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간을 달라고 하니 속은 느낌이 들겠지. 요즘으로 치면 헤어질 때가 되어서 명품 가방 사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거 요즘식으로 각색해도 될 것 같다. 천년만에 깨어난 여인이 명품 가방을 가져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던가 인어의 가루를 먹어야 살 수 있다던가. 스타벅스 앞에서 묘한 표정을 지으면 더 재밌겠지.


이 영화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줄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

여자 때문에 죽냐? 바보같은 놈.

두번째 에피소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간 때문이다.

세번째 에피소드

결혼은 미친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