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 6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을유문화사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몸속에 또다른 내가 있고 나는 누군가가 조종하는 껍데기일 뿐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말고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리차드 도킨스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리차드 도킨스의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뭔가 재미있는 내용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리 알았어야 했다.

유전공학과 생물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 사례로 제시된 다양한 생물들의 행동들은 별도의 부연설명이 없다. 한마디로 친절하지 않은 책이다. 기껏 아는거라고는 뻐꾸기가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 것 정도.


어렸을 적 보았던 과학책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보았을때 두말 필요없이 "그렇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윈이 직접 그린 그림들 때문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된 그림을 보면서 진화론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그림은 없다. 물론 다윈처럼 그림을 잘 그려야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물학 지식이 짧은 대중독자들을 위해서 사진 몇 장 정도는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주요한 내용은 생물의 행동이 자신의 생존을 위하기 보다는 유전자를 후세에 널리 퍼트리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들도 유전자를 후세에 퍼트리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하면 꽤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동물들은 서열을 인정하는 것일까? 서열을 인정하는 것이 집단을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서열이 높으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에 유리하다. 그럼 1인자와 싸워서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1인자와 싸우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지면 2인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맨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결국, 유전자를 퍼트리는 합리적인 방법은 1인자가 약해지거나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책을 읽어가면서 뒤로갈수록 표와 그래프가 난무할 걸로 예상했다.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행동의 결과는 후손들의 수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글자만 나온다. 아주 뒤로 가야 약간의 표가 나온다. 특히 당하면 바로 보복하는 전략, 두번 당하면 한번 보복하는 전략, 보복하지 않는 전략 등 서로 다른 생존전략을 가진 개체들이 세대가 흐를수록 어떻게 변하는가를 다루는 내용에서는 그래프가 나올 걸로 기대했다. 1000세대 정도가 지난후 어떤 전략을 택한 개체의 수가 늘어나는가를 나타내는데 그래프만큼 좋은것이 있을까.

번역이 엉터리라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독자들이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예상하고 쓴 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이 아쉬운것은 진화생물학자가 쓴 책이니 만큼 이 책 자체도 진화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책에 버전을 붙여서 이기적 유전자 1.0 , 2.0 하는 식으로 계속 개정판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 도입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에서 '젊은 여성'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처녀'가 되고 이것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번역되면서 잘못전달된 내용이나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진 내용들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내용들을 추가하면서 책 자체를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갔다면 더 그럴듯 했을것 같다.

그래도 이책을 추천하는 것은 독특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